GOKSEONG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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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죽곡면은 백제 22대 문중왕 때부터 군 명을 옥내라고 칭하고 읍지를 당동리에 두었다고 하며, 신라 경덕왕 16년(서기757년)에 군명을 곡성이라 개칭하였고 고려 창왕 말년(1389년)에 당동 읍을 곡성읍 읍내리로 이속함에 따라 곡성군에 속하였는데 우리 면이 죽곡면으로 명명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죽곡면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이어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죽곡면은 대나무밭골(대실)이라는 이름입니다. 죽곡의 마을 마다 대밭이 있고 대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지역이지만 농토가 좁은 지역이여서 논밭으로 개간이 되어 대밭으로 가꾸어지지 못하고 대나무 밭이 줄어들게 되었으며 현재에는 대나무로 인한 산업적인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으로 축소되었습니다. 하죽리 마을 앞에는 무성한 대나무 밭이 있어 하죽리라고 했는데 이 대나무가 100년이 되어야만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되는데 이 열매가 죽실이며, 죽실이 많다고 하여 죽실마을이 있었습니다.
죽곡면내의 마을이 14개리 28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죽곡면내의 산을 보면 봉정리 주변에 통명산(764.8m), 천덕산(673.7m), 곤방산(714.8m), 주부산(678.4n)이 있고 화양리와 태평리, 연화리의 뒤에 화장산(503m)이 있으며, 삼태리의 고장산(503.5m), 하죽리의 뒤에 청룡봉(172.4m), 남양리에 바루봉(454.2m), 북소 앞의 국사봉(192m), 하한리의 응봉(570.8m), 구룡리의 비래봉(690.9m), 동계리 뒤의 동리산, 유봉리의 봉두산(752.8m) 등이 있습니다. 봉정리에서 발원하여 흘러 온 죽곡천과 동리산에서 흘러 온 동계천이 대황강(보성강의 하류 일부)과 만나서 합류하여 압록지점에서 섬진강과 합쳐 구례군을 거쳐서 하동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보성강의 물이 보성군의 제암산에서 발원을 하여 주암땜에 모여서는 한 때 순천과 여수 목포 등 전남 광주 전 주민의 식수원이 되고 있는 물이어서 아주 귀중한 존재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죽곡면은 보성강물이 압록에서 끝나는 특수한 형태의 지역으로, 산이 좋고 물이 맑은 천혜의 보고 지역입니다. 죽곡강이 보성강과 만나는 곳 태평리의 앞 강터에는 커다란 모래섬(섬터)이 형성이 되어 있고 소나무와 잡나무 등이 자라는데 가을철에 태풍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는 때에는 강 상류에서 흘러서 온 황토물(북덩물)이 섬터를 넘쳐서 흐르게 되고 풀이나 나무 가지 등이 떠내려 흘러가다가 섬터의 나무에 걸려있기도 하는 장면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물이 넘칠 때에는 섬터의 하류 부분에 V자 모양으로 물길을 돌로 쌓아서 막고 나뭇가지를 역어 막아서 물고기가 쉽게 갈 수 없게 만든 후 물이 모아지는 중앙 하류 부분에 물의 낙차를 만들고 그 아래에 대나무로 얽어서 받힘 대를 만들어 이를 낙차의 아래 쪽에 받히는 장치인 계(?)를 만들어 장치를 해놓으면 봄철에 상류로 올라갔던 은어, 민물장어, 참계, 쏘가리 등의 어종들이 자라서 떠내려 오다가 계에 걸리게 되는데 이 때 잡히는 물고기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고, 평상시에도 물고기가 잡혀서 주민의 생선 감 제공의 역할을 했었습니다. 봉정리 2구에는 옛날에 대나무 밭이 크게 이루어져 있어 죽성리라고 불렀고, 봉정리 1구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평화와 부(富) 그리고 부부애를 상징하는 새가 봉황새인데 이 봉황새는 오동나무에 주리를 틀고~집을 짓고~ 죽실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이 새가 살기에 알맞은 곳이 바로 죽곡 지역이고 한 쌍이 있었는데 봉정 지역과 동계리 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마을 명으로 보는 전설이 있습니다. 봉정리는 봉황새가 살았다는 뜻으로 봉정이라고 했는데 장자산을 봉황새의 몸통으로 하고 통명산과 천덕산을 양 쪽의 날개로 하며 단산당등을 봉의 머리로, 마을 앞에 있는 큰 바위를 봉황새의 알로 하는 형상으로 “날라서 온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 즉 포란비봉형(抱卵飛鳳形) 형상으로 봉정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한 마리의 봉황새는 동계골로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동계리는 오동(梧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고 하여 오동나무골 桐溪里(동계리)로 불리어져 있고 조금 더 올라서 가면 오동나무 들거리라는 산으로 동리산(桐裡山)이 있는데 이 산에 태안사(泰安寺) 사찰이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비봉리가 있는데 봉황새가 날아서 이 마을에 왔다는 뜻으로 비봉(飛鳳)이라고 하였습니다. 더 올라가면 유봉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날아 온 봉황새가 머무르며 알을 품고 있다는 비봉포란(飛鳳抱卵)으로 비봉과 유봉이 봉황새와 관계가 있는 이름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비래봉과 봉두산이 있는데 이는 날아서 온(비래) 봉황새가 앉아있는 모습으로 봉황새의 머리가 되는 곳이 봉두산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죽곡에 한 쌍의 봉황새가 평화를 누리며 태평하게 살아가는 곳이 죽곡면 즉 대나무밭골(대실)인데 죽곡면 소재지의 마을 명칭을 태평리라고 명명하여 죽곡면의 온 면민이 태평을 누리고 평안하게 부를 누리며 산다는 뜻으로 태평리라고 한 것입니다.
또 동리산에 있는 사찰은 태안사(泰安寺)로 죽곡의 태안을 빌어주는 듯하여 더욱 마음이 포근합니다. 신풍 1.2구(신풍리와 반송리)에는 새롭게 풍년을 빈다는 뜻이 있어 신풍이라고 하였고, 반송리에는 반송사라는 옛 큰절이 있었다는 곳이며 시조를 모시는 기성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연화리에는 큰 연못이 있어 연꽃이 많이 피었다는 전설이 있어 연화리라고 하였고 삼태리에는 고장산, 화장산, 석장골의 3장이 있고 연속해서 세봉오리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 삼태리라고 했답니다. 당동은 옛 옥천현의 읍리로 이어왔고 서정 죽천 마을로 이어 온 대나무가 무성한 마을이었습니다. 남양리는 남쪽을 향해 있다고 하여 남양리라고 하였고 북소는 대황강(보성강)의 물이 맴돌아 흘러서 생긴 깊은 소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며 들렸다고 북소라고 하였으며 원달 마을은 옛날 원달사라는 절이 있다고 원달이라고 하였고 고치리에는 산죽 즉 신우대가 많다고 고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용정 마을은 마을 뒷산의 줄기가 용과 같이 5개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용정이라고 하였으며 하한리는 상한리와 하한리가 합쳐져서 되었는데 죽곡의 한 배미의 위와 아래가 된다고 하여 상한, 하한이라고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죽곡은 면 행정의 고장이지만 물이 맑고 산이 푸르러 천연의 보고를 이루고 있어 이 고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건강과 행복이 보장되는 고을이었으며 봉황새 한 쌍이 행복스럽게 살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 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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