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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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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면 지명유래

목동1구, 목동2구, 목동3구, 뇌연마을(뇌죽1구), 죽림마을(뇌죽2구), 대사마을(대사1구), 사동마을(대사2구), 백곡마을(백곡1구), 상백마을(백곡2구), 고달마을(고달1구) ,수월마을(고달2구), 호곡마을, 가정마을(두가1구), 두계마을(두가2구)
목동1구 목동(牧洞)마을
목동리(牧洞里)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이라 하여 설촌 당시에는 ‘먹골’이라 불렀다. 그러다 1894년 동리폐합(洞里廢合) 당시 마을의 지세를 본 따 ‘기를 목(牧)’자와 ‘마을 동(洞)’자를 써 ‘목동리(牧洞里)’라 불리우게 되었으며, 마을이 커서 1953년 행정구역개편(行政區域改編)당시 골목길을 따라 목동리(牧洞里)의 일부를 목동1구(牧洞1區)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목동2구 목동(牧洞)마을
목동1구(牧洞1區)와 동일하며,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목동리(牧洞里)에서 그 일부가 목동2구(牧洞2區)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목동3구 목동(牧洞)마을
목동1구(牧洞1區)와 동일하며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목동리(牧洞里)의 일부를 분구하여 목동3구(牧洞3區)로 개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뇌죽1구 뇌연(磊淵)마을
마을앞 섬진강 변에 ‘둥둥바위’가 있고, 그 옆에 ‘세개의 바위 무더기’(磊)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밑은 깊은 소(沼)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형지세를 두고 주민들은 ‘머소(沼)마을’ 또는 ‘미세마을’이라 불렀으며 한자로 표현해 ‘뇌연(磊淵)’이라 불러왔다. 1953년 행정구역개편(行政區域改編)으로 ‘뇌연(磊淵)’과 옆 마을인 ‘죽림(竹林)’마을에서 각각 한자씩 취해 뇌죽리(磊竹里)라 칭하고 뇌죽1리(磊竹1里)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뇌죽2구 죽림(竹林)마을
마을 형국이 ‘죽낭탄금(竹囊灘琴)’형국으로 ‘마을 뒷 산에 대숲이 무성(茂盛)하면 마을이 성(盛)한다’하여 마을사람들이 대숲을 잘 가꾸어 마을명이 ‘대숲마을’ 또는 ‘죽림(竹林)’이라 불리어오다 1953년 행정구역개편(行政區域改編)으로 ‘뇌연(磊淵)’과 옆마을인 ‘죽림(竹林)’마을에서 각각 한자씩 취해 뇌죽리(磊竹里)라 칭하고 뇌죽2리(磊竹2里)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사1구 대사(帶社)마을
이 마을의 앞산과 뒷산이 산세가 마치 ‘사람이 도포를 입고 띠를 맨 것처럼 생긴 형국’이라 하여 띠 대(帶)자를 붙여 ‘대동(帶洞)’또는 ‘댓굴’이라 불리어왔으나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동(帶洞)과 옆마을인 사동(社洞) 마을에서 각각 한자씩 취해 대사리(帶社里)로 명명 했으며, 현재는 대사1리(帶社1里)로 부르고 있다.
대사2구 사동(社洞)마을
마을형국이 ‘뱀 형국’이라 하여 ‘사동(蛇洞)’이라 구전되어 왔으나 그 후 ‘사동(社洞)’으로 개칭되었다.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동(社洞)과 옆 마을인 대동(帶洞) 마을에서 각각 한 자씩 취해 대사리(帶社里)로 명명했으며, 대사2리(帶社2里)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백곡1구 백곡(百谷)마을
마을 형국이 ‘강물에 뜨는 배 모양이다’하여 ‘배실’이라 하였으며, 상·하마을이 있어 웃마을은 ‘윗배실’, 아랫마을은 ‘아랫배실’로 불리어 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폐합 당시 아랫배실은 ‘하백(下白)’이라 하였던 것을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백곡1리(百谷1里)로 개편되었다.
백곡2구 상백(上白)마을
마을 형국이 ‘강물에 뜨는 배 모양이다’하여 ‘배실’이라 하였으며, 상·하마을이 있어 웃마을은 ‘윗배실’, 아랫마을은 ‘아랫배실’로 불리어 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폐합 당시 윗배실은 ‘상백(上白)’이라 하였던 것을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백곡2리(百谷2里)로 개편되었다.
고달1구 고달(古達)마을
현재의 섬진강에 제방을 쌓기 전, 섬진강이 분류되어 마을앞 쪽으로 흘렀을 당시 섬진강물을 건너기 위해 높은 다리를 놓았다 하여 ‘고(高)’자를 써 ‘고다리’라 불러오다 조선조말 ‘고달(古達)’이라 표기해 왔으며, 1953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달1리(古達1里)가 되었다.
고달2구 수월(水越)마을
고달면 소재지인 목동리(牧洞里)마을의 주장자(朱長者)라는 부자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정도령(鄭道令)이 목동 앞뜰에서 농사철이 되면 물이 모자라므로 물을 대기 위한 관개용수(灌漑用水)를 위하여 ‘마을 앞 석산을 헐어 고달천(古達泉)의 물을 넘겼다’하여 ‘무넘이’ 또는 물 수(水)자와 넘길 월(越)자를 취하여 ‘수월(水越)’이라 불리어 오다가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달2리(古達2里)로 개칭했다.
호곡리 호곡(虎谷)마을
마을의 형국이 호랑이가 잠을 자는 ‘숙호형국(宿虎形局)’이라 하여 ‘범실’이라 불러왔으며, 웃마을을 ‘웃범실’, 아랫마을을 ‘아랫범실’로 부른다. 웃범실, 아랫범실, 산골, 고리실 등 4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1953년 행정구역 개편시 ‘호곡리(虎谷里)’로 통합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가1구 가정(柯亭)마을
마을앞에 무성한 수림(樹林)이 있어 수림(樹林)에서 섬진강(蟾津江)을 관망(觀望)하면 ‘마치 명산대천(名山大川)을 혼자 만끽할수 있는 착각에 빠져든다’는 것으로 ‘정자(亭子)에 누워있으면 도끼자루(柯) 썩은 줄 모른다’하여 ‘가정(柯亭)’이라 고 불리우다 윗마을인 두계리(杜溪里)에서 두(杜), 가정(柯亭)마을에서 가(柯)를 취해 두가리(杜柯里)라 칭하였다.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가1리(杜柯1里)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가2구 두계(杜溪)마을
마을입구 양측 산세가 마주보며, 그 사이를 겨우 계천만 흘러 마을안은 분지를 형성 마을에서 바라보면 마치 어귀가 막힌(杜) 것 같이 보여 ‘두계(杜溪)’또는 ‘두보(杜甫)’라 불려오다가 두계리(杜溪里)에서 두(杜), 아랫마을 가정(柯亭)마을에서 가(柯)를 취해 두가리(杜柯里)라 칭하고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가2리(杜柯2里)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콘텐츠관리

  • 담당부서 고달면
  • 담당자 전호성
  • 연락처 061-360-7712
  • 최종수정일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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