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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덕양서원에 꼭 가봐야 하는 이유

작성일
2023.12.24 17:46
등록자
나종화
조회수
25
덕양서원
덕양서원
덕양서원
덕양서원
덕양서원


옛말에 땅을 보면 인물이 보이고, 인물을 보면 땅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땅은 거짓이 없거든요. 곡성은 산과 강 그리고 평야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고장입니다. 무엇 하나 넘치거나 결핍되어 있지 않은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굳이 풍수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고장은 착하고, 원만하고,
의롭고, 성실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기 마련입니다.

이번에는 곡성에서 태어났거나. 곡성에서 자란 인물을 살펴볼게요.
먼저 신숭겸 장군이 있습니다. 고려사에서는 신숭겸 장군이
후덕하며, 신망이 있었으며, 학문적 소양을 갖춘 지장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공산성 전투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왕건을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한 충신으로 조선시대까지 추앙 받은 인물입니다.

입면 약전리 출신 조통 선생은 오늘날 서울대학교 총장격인 국자감 대사성을 거친
전형적인 문인이었음에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민란의 한복판에 들어가
성난 백성들을 설득하여 원성을 잠재우는 용기를 발휘한 인물이었습니다.

조선 개국 공신 마천목 장군 역시 곡성 오지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곡성에서
생애를 마친 곡성사람입니다. 이방원을 도와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여
건국 초기 조선을 안정시킨 대표적인 인물이었죠.

임란 최초의 의병장 유팽로 장군은 임금께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문신으로
임진왜란 발발과 함께 의병을 모아 금산성으로 진군하여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유팽로 장군 덕분에 왜군의 호남 진출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역사를 빛낸 곡성 인물들의 공통점은 학문도 깊고, 기개가 넘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목숨까지 바쳤던 의로움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덕양서원은 곡성 인물 중 원조인 신숭겸 장군을 배향하는 서원입니다.
숙종 때 문을 열어 장군의 얼을 되새기는 인재양성의 요람 역할을 하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때 인해 문을 닫았다가
곡성 유림들과 신숭겸 장군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 덕양서원은 곡성의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덕양서원을 곡성 학생들이나 출향한 자재분들의 후손들의 필수 답사코스로 정하여
조상의 얼을 되새기는 장소로 삼았으면 합니다.

덕양서원은 우리나라 전형적인 서원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정문인 외삼문과 강당 그리고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 연서재와 서재 신덕재,
신숨겸 장군이 활약상이 적혀진 비를 보관한 비각,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
신숭겸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덕양서원의 심장인 덕양사가 있습니다.


♣ 주차장 이용

덕양서원 정문 앞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습니다.

♣ 대중교통으로 오실 경우
옥곡면 소재지 오곡면 보건지소앞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약 15분 가량 올라오면 덕양서원입니다.

■ 덕양서원과 꼭 가볼만한 용산재
신숭겸 장군 탄생지인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마을에 세워진
신숭겸 장군 사당으로 유허비와 신숭겸 장군 동상 각종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담당자 : 관광과 관광정책팀
  • 061-360-8412
  • 최종업데이트 2024.04.30